손상 복원성과 구획
배는 언젠가 부딪히고 긁히고 찢어진다. 충돌이나 좌초로 선체에 구멍이 났을 때, 배가 곧바로 가라앉지 않고 버티게 해 주는 것은 선체를 여러 방으로 나누는 수밀 격벽이다. 이 장에서는 물이 들어온 배의 새 흘수와 트림을 계산하는 두 가지 방법에서 출발해, 격벽을 어디에 몇 개 세워야 하는지를 정하는 가항 길이, 한쪽으로만 물이 찬 배의 횡경사와 교차 침수, 그리고 오늘날 국제 규칙의 바탕인 확률론적 손상 복원성까지 차례로 만져 본다. 마지막에는 타이타닉의 구획을 직접 침수시켜 본다.
- 부가 중량법과 상실 부력법으로 침수 후 흘수를 계산하고, 두 방법의 GM이 다른 이유를 설명한다.
- 투과율의 의미를 알고, 수밀 격벽·격벽 갑판·마진 라인의 관계로 생존 여부를 판정한다.
- 구멍 크기와 깊이로 유입량을 추정하고, 배수 펌프가 왜 큰 구멍을 이길 수 없는지 이해한다.
- 가항 길이 곡선과 구획 계수로 격벽 간격을 검사한다.
- 비대칭 침수가 만드는 횡경사와 교차 침수 장치의 효과, 손상 후 GZ 곡선의 변화를 읽는다.
- 달성 구획 지수 \(A=\sum p_i s_i\)의 의미를 알고, 격벽 배치가 \(A\)를 어떻게 바꾸는지 실험한다.
- 이중 선저·이중 선체의 역할과 타이타닉 이후 SOLAS가 생겨난 과정을 안다.
물이 들어온 배: 부가 중량법과 상실 부력법
선체에 구멍이 나서 한 구획에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하자. 구멍이 수면 아래에 있으면 물은 구획 안의 수위가 바깥 수면과 같아질 때까지 들어온다. 그 사이 배는 가라앉아 흘수가 늘어나고, 그러면 바깥 수면이 올라가 물이 조금 더 들어온다. 결국 배는 새로운 평형 상태에 이른다. 이 평형을 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 부가 중량법(Added Weight Method): 들어온 물을 배에 새로 실린 화물로 본다. 배수량이 늘고, 무게중심 \(G\)가 물 쪽으로 옮겨 가며, 구획 안 물의 자유수면 효과를 빼 주어야 한다. 물의 양이 흘수에 따라 달라지므로 반복 계산이 필요하다.
- 상실 부력법(Lost Buoyancy Method): 침수 구획을 아예 배가 아닌 곳, 바다의 일부로 본다. 배의 무게와 \(G\)는 그대로이고, 그 구획이 내던 부력과 수선면이 사라진다. 남은 선체가 같은 무게를 떠받치려면 더 가라앉아야 한다.
길이 \(L\), 폭 \(B\), 흘수 \(T\)인 상자형 바지선의 가운데에 길이 \(l\)의 구획이 침수되었다고 하자. 상실 부력법으로 보면, 사라진 수선면은 \(\mu l B\)이고 남은 수선면 \((L-\mu l)B\)가 잃어버린 부력 \(\mu l B T\)를 보충해야 하므로
부가 중량법으로 계산해도 침하량은 정확히 같다. 그러나 GM은 다르게 나온다. 부가 중량법의 배수량은 \(\Delta+w\)로 커졌기 때문이다. 둘이 같은 물리를 묘사한다면 같아야 하는 것은 GM 자체가 아니라 복원 모멘트 \(\Delta\cdot GM\)이다. 실제로 \(\Delta\,GM_{LB} = (\Delta+w)\,GM_{AW}\)가 성립한다. 손상 복원성 규칙은 배의 무게가 변하지 않는 상실 부력법을 기본으로 쓴다.
투과율
구획이 텅 비어 있지 않으면 물이 들어갈 자리는 줄어든다. 구획 부피 중 물이 찰 수 있는 비율을 투과율(Permeability, μ)이라 한다. 강재·기관·화물이 차지한 부피는 물이 들어가지 못한다.
| 구획 | 대표 투과율 μ | 비고 |
|---|---|---|
| 빈 공간, 밸러스트 탱크, 거주구 | 0.95 | 구조 부재만 차지 |
| 기관실 | 0.85 | 주기관·보기·배관 |
| 건화물 창(만재) | 0.6~0.7 | 화물 종류에 따라 크게 다름 |
| 액체 화물 탱크 | 0~0.95 | 가득 찬 탱크는 물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
두 계산법 나란히 놓기: 상자형 바지선
수밀 격벽과 마진 라인
배를 길이 방향으로 나누는 강철 벽을 수밀 격벽(Watertight Bulkhead)이라 한다. 한 구획에 물이 들어와도 격벽이 막아 주므로, 배는 그 구획의 부력만 잃는다. 모든 상선에는 최소한 다음 격벽이 있다.
- 충돌 격벽(Collision Bulkhead): 선수에서 대략 0.05L~0.08L 뒤. 정면 충돌로 선수가 부서져도 그 뒤는 지킨다.
- 선미 격벽(Aft Peak Bulkhead): 프로펠러 축이 선체를 뚫고 나가는 선미관을 감싼다.
- 기관실 앞뒤 격벽: 가장 크고 중요한 구획인 기관실을 나눈다.
- 화물창 격벽: 선박 길이에 따라 개수가 늘어난다.
격벽이 올라가는 가장 높은 갑판을 격벽 갑판(Bulkhead Deck)이라 한다. 침수 후 수면이 격벽 갑판을 넘으면 물은 갑판 위로 흘러 다음 구획으로 넘어가고, 격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래서 고전적인 결정론적 구획 규칙은 격벽 갑판 바로 아래, 선측에서 76 mm 아래에 마진 라인(Margin Line)을 긋고, 침수 후 흘수선이 이 선에 닿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침수 후 평형은 두 조건으로 구한다. 남은 선체의 배수 용적이 원래와 같아야 하고(평행 침하), 남은 선체의 부심이 \(G\)와 같은 세로 위치에 와야 한다(트림). 실제 선형에서는 단면적이 높이에 따라 변하므로, 흘수와 트림을 조금씩 바꿔 가며 두 조건을 동시에 맞추는 반복 계산(뉴턴법)을 쓴다.
구획 침수 시뮬레이터: 격벽을 옮기고, 구획을 터뜨리자
진행 침수: 구멍으로 들어오는 물
앞 절은 물이 다 들어온 뒤의 최종 평형만 보았다. 실제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즉 시간이다. 수면 아래 깊이 \(h\)에 있는 면적 \(A\)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유량은 토리첼리 정리에 유출 계수를 곱한 식으로 추정한다.
수심 5 m에 지름 1 m(약 0.79 m²)의 구멍이 나면 \(Q \approx 0.6\times0.79\times\sqrt{2\times9.81\times5}\approx 4.7\ \text{m}^3/\text{s}\), 시간당 약 17,000 m³다. 대형 상선의 빌지 펌프는 대개 시간당 수백 m³ 수준이다. 펌프는 작은 누수를 감당하기 위한 것이지, 충돌로 생긴 큰 구멍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큰 구멍 앞에서 배를 지키는 것은 격벽이다.
구멍 대 펌프: 시간에 따른 수위와 흘수
가항 길이 곡선과 구획 계수
어떤 위치를 중심으로 한 구획이 침수되었을 때, 흘수선이 마진 라인에 꼭 닿는 구획 길이를 그 위치의 가항 길이(Floodable Length)라 한다. 이것을 배 길이를 따라 그리면 가항 길이 곡선이 된다. 선체 가운데는 단면이 크고 트림이 잘 안 생기므로 곡선이 높고, 선수미 쪽으로 가면 작은 침수에도 트림이 커져 곡선이 낮아진다. 아주 끝에서는 선형이 가늘어져 잃는 부력 자체가 작으므로 다시 올라간다.
규칙은 여기에 안전 여유를 곱한다. 구획 계수(Factor of Subdivision, F)를 곱한 \(F\times\)가항 길이를 허용 길이(Permissible Length)라 하고, 실제 구획 길이가 그보다 짧아야 한다. \(F=1\)이면 한 구획 침수에 견디고, \(F=0.5\)이면 이웃한 두 구획이 함께 침수되어도 견딘다는 뜻이다. 과거 여객선 규칙은 배가 길고 승객이 많을수록 작은 \(F\)를 요구했다.
가항 길이 곡선 그리기와 격벽 간격 검사 (격벽을 끌어 보자)
비대칭 침수와 교차 침수
선측 충돌은 흔히 한쪽 현의 날개 탱크(Wing Tank)나 이중 선측 공간만 터뜨린다. 그러면 물의 무게가 중심선에서 떨어진 곳에 실려 배가 그쪽으로 기운다. 작은 각에서 횡경사는 다음과 같다.
횡경사는 그 자체로 위험하다. 갑판 끝이 잠기면 복원력이 급격히 줄고, 기울어진 쪽의 개구부(통풍통, 문)로 물이 들어가 침수가 번진다. 구명정을 내리기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양현 탱크를 큰 관으로 연결하고 밸브를 달아, 손상 시 반대쪽 탱크에 일부러 물을 넣어 경사를 바로잡는 교차 침수 장치(Cross-Flooding Arrangement)를 둔다. 경사는 사라지는 대신 배는 더 가라앉는다. SOLAS는 교차 침수가 가능한 한 60초 안에 끝나도록 요구하고, 그보다 오래 걸리면 중간 단계의 복원성도 따로 확인하게 한다.
날개 탱크 침수와 교차 침수 밸브
손상 시 GZ 곡선
3장의 GZ 곡선은 손상 후에도 같은 방법으로 그릴 수 있다. 상실 부력법이라면 배의 무게와 \(G\)는 그대로 두고, 경사각마다 침수 구획의 잠긴 부분을 뺀 나머지 선체로 부력과 부심을 계산하면 된다. 손상 후 곡선은 대개 세 가지가 달라진다.
- 평행 침하로 건현이 줄어 갑판 끝이 더 일찍 잠긴다. 최대 GZ가 작아지고 더 작은 각에서 나타난다.
- 수선면 상실로 BM이 줄어 초기 기울기(GM)가 작아진다.
- 비대칭 침수면 곡선이 아래로 밀려 0이 아닌 각에서 평형(\(GZ=0\))이 생긴다. 복원 범위도 그만큼 줄어든다.
SOLAS의 생존 확률 \(s\)는 바로 이 손상 후 GZ 곡선으로 계산한다. 최종 평형 경사, 최대 GZ, 복원 범위가 클수록 \(s\)가 1에 가까워진다(7절).
손상 전·후 GZ 곡선 비교
확률론적 손상 복원성 (SOLAS 2009)
가항 길이와 구획 계수는 "몇 개 구획 침수에 견디는가"를 묻는 결정론적 방법이다. 그러나 실제 사고에서 구멍이 어디에, 얼마나 길게 날지는 우연이다. 2009년부터 화물선과 여객선 모두에 적용되는 SOLAS 제II-1장은 이 우연을 정면으로 다룬다. 가능한 모든 손상 경우 \(i\)에 대해
- \(p_i\): 그 손상(특정 구획 또는 이웃한 구획 묶음)이 일어날 확률. 실제 충돌 통계에서 얻은 손상 위치·길이 분포로 계산한다.
- \(s_i\): 그 손상을 입었을 때 살아남을 확률. 손상 후 GZ 곡선의 평형 경사, 최대 GZ, 복원 범위로 계산한다.
\(A\)는 "무작위로 손상을 입었을 때 살아남을 확률"로 읽을 수 있다. 격벽을 어디에 몇 개 두느냐에 따라 \(p_i\)의 분할이 달라지고, 좁은 구획이 많으면 큰 손상이 여러 구획을 동시에 뚫어 \(s\)가 0이 되기 쉽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므로 설계자는 \(A\)를 높이는 배치를 찾아 이리저리 격벽을 옮겨 본다. 아래 시뮬레이터의 아래쪽 그림은 손상 중심 위치(가로)와 손상 길이(세로) 평면이다. 각 삼각형·마름모가 하나의 손상 경우이고, 그 넓이에 확률 밀도를 곱한 것이 \(p_i\)다.
격벽 배치로 달성 지수 A 올리기 (격벽을 끌어 보자)
이중 선저·이중 선체와 좌초
가로 격벽이 길이 방향의 침수를 막는다면, 선체 바닥과 옆면을 두 겹으로 만드는 것은 구멍이 화물창까지 닿지 않게 한다. 이중 선저(Double Bottom)는 바닥판 위에 1~2 m 높이로 내저판을 하나 더 깐 구조다. 좌초로 바닥이 찢어져도 이중 선저 탱크만 침수되고 화물창은 마른 채로 남는다. 이중 선저 안은 밸러스트·연료 탱크로 쓰인다.
유조선은 1989년 알래스카 해역의 대형 기름 유출 사고 이후 미국 OPA 90과 MARPOL 규정에 따라 이중 선체(Double Hull)가 의무화되었다. 화물 탱크를 선측과 선저에서 대략 2 m씩 떨어뜨려 감싸는 구조다. 이 공간은 충돌·좌초 시 완충대이자 밸러스트 탱크가 된다. 다만 이중 선체 공간이 비대칭으로 침수되면 앞 절의 횡경사 문제가 생긴다.
좌초·충돌 시나리오: 안쪽 판이 버티는가
타이타닉과 SOLAS의 탄생
1912년 4월 14일 밤, 북대서양에서 빙산을 스친 타이타닉은 2시간 40분 만에 가라앉았다. 이 배는 15개의 가로 격벽으로 16개 구획을 나누었고, 앞쪽 구획 네 개까지는 침수되어도 뜰 수 있게 설계되었다. 빙산은 우현 선수 쪽 선체를 따라 약 90 m에 걸쳐 판의 이음매를 벌려 놓았고, 앞쪽 다섯 개(일부 기록은 여섯 개) 구획이 동시에 열렸다.
문제는 격벽의 높이였다. 격벽은 수밀 갑판 하나(대부분 E 갑판)까지만 올라갔고, 그 위는 위아래로 열려 있었다. 앞 구획들이 물을 받아 선수가 내려가자, 다섯 번째 구획의 수면이 그 뒤 격벽의 꼭대기를 넘었다. 물은 얼음 상자에 붓듯 다음 구획으로 넘쳐 들어갔고, 그다음, 또 그다음으로 이어졌다. 격벽은 침몰을 막지 못하고 늦추기만 했다.
| 연도 | 사건 |
|---|---|
| 1912 | 타이타닉 침몰. 탑승자 2,200여 명 중 1,500여 명 사망. 구명정 정원은 탑승자의 절반 정도였다. |
| 1914 | 제1차 해상 인명 안전 국제 협약(SOLAS) 채택: 구획, 구명정 정원, 무선 당직, 빙산 순찰. |
| 1948·1960·1974 | 개정을 거듭해 오늘날의 SOLAS 1974 체계로 정리. 구획 계수와 가항 길이에 기반한 결정론적 규칙. |
| 1990 | 화물선에 확률론적 손상 복원성 도입. |
| 2009 | 여객선·화물선 확률론적 규칙 통합(SOLAS 2009, 제II-1장 B 파트). |
타이타닉형 구획 침수: 격벽을 넘는 물
타이타닉 이후의 교훈은 하나로 모인다. "가라앉지 않는 배"는 없다. 그래서 오늘날의 규칙은 생존 확률을 숫자로 요구하고(\(A\ge R\)), 그래도 가라앉을 때를 대비해 모든 탑승자를 위한 구명 설비, 24시간 무선 당직, 승무원 훈련을 함께 요구한다. 구획은 침몰을 막는 장치인 동시에, 사람들이 배를 떠날 시간을 버는 장치다.
핵심 정리
- 침수는 부가 중량법(물 = 화물)과 상실 부력법(구획 = 바다)으로 계산한다. 새 흘수는 같고, GM은 다르지만 복원 모멘트 \(\Delta\cdot GM\)은 같다.
- 투과율 μ는 구획 중 물이 찰 수 있는 비율이다. 빈 공간 0.95, 기관실 0.85, 만재 화물창 0.6~0.7.
- 수밀 격벽은 손상을 한 구획에 가둔다. 침수 후 흘수선이 격벽 갑판 아래 76 mm의 마진 라인을 넘으면 결정론적 기준에서 불합격이다.
- 구멍 유입량은 \(Q=C_dA\sqrt{2g\Delta h}\). 지름 1 m 구멍은 시간당 1만 m³를 넘어 펌프로는 감당할 수 없다.
- 가항 길이는 흘수선이 마진 라인에 닿는 최대 구획 길이다. 허용 길이 = F × 가항 길이이며, 삼각형 작도로 격벽 간격을 검사한다.
- 비대칭 침수는 \(\tan\varphi\approx w y_w/(\Delta' GM')\)의 횡경사를 만든다. 교차 침수는 경사를 줄이는 대신 흘수를 늘린다.
- SOLAS 2009는 \(A=\sum p_i s_i\ge R\)를 요구한다. \(p\)는 손상 통계, \(s\)는 손상 후 GZ 곡선에서 나온다.
- 이중 선저·이중 선체는 바깥 판의 손상이 화물창까지 닿지 않게 한다. 타이타닉은 격벽이 낮아 물이 차례로 넘쳐 들어가 침몰했고, 그 사고가 SOLAS를 낳았다.
확인 퀴즈
Q1. 상자형 바지선(L 100 m, T 6 m) 가운데의 길이 20 m 빈 구획(μ = 1)이 침수되었다. 상실 부력법으로 구한 평행 침하량은?
Q2. 같은 침수를 부가 중량법과 상실 부력법으로 계산했다. 반드시 같아야 하는 것은?
Q3. 만재된 건화물 창의 투과율이 빈 창(0.95)보다 작은(0.6~0.7) 이유는?
Q4. 수면 아래 4 m에 0.2 m² 구멍이 났다(Cd = 0.6). 유입량은 대략?
Q5. 구획 계수 F = 0.5가 뜻하는 것은?
Q6. 우현 날개 탱크가 침수된 배에서 교차 침수 밸브를 열었다. 결과로 옳은 것은?
Q7. SOLAS 2009의 달성 구획 지수 A에서 si가 나타내는 것은?
Q8. 타이타닉 침몰에서 "격벽 높이"가 문제가 된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