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파도
배가 만나는 가장 큰 적은 바다 그 자체다. 바다의 파도는 제멋대로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겹씩 벗겨 보면 놀랄 만큼 단순한 규칙을 따른다. 사인파 하나의 물리(선형 파 이론)에서 출발해, 수많은 사인파를 겹친 불규칙한 바다(파 스펙트럼)와 그 파고의 통계, 그리고 해안에 다가가며 모습을 바꾸는 파도까지 차례로 만져 본다. 이 장의 언어는 11장에서 파도 속 배의 운동을 다룰 때 그대로 쓰인다.
- 풍속·취송 거리·지속 시간이 파고와 주기를 어떻게 정하는지 설명한다.
- 에어리 선형 파의 물 입자가 원(심해)이나 타원(천해) 궤도를 그리며, 운동이 깊이에 따라 \(e^{kz}\)로 줄어드는 이유를 이해한다.
- 분산 관계 \(\omega^2 = gk\tanh kh\)로 파장과 파속을 계산하고, 심해 근사 \(\lambda \approx 1.56T^2\)를 쓴다.
- 위상 속도와 군속도를 구분하고, 파 에너지 \(E=\rho g H^2/8\)와 에너지 수송을 계산한다.
- 파 스펙트럼(PM, JONSWAP)에서 유의파고 \(H_s = 4\sqrt{m_0}\)를 구하고, 레일리 분포로 최대 파고를 추정한다.
- 천수 변형, 쇄파, 굴절, 쓰나미의 속도를 설명하고, 너울과 풍랑을 구분한다.
파도의 얼굴과 탄생
바다의 파도 대부분은 바람이 만든 풍파(Wind Wave)다. 수면 위를 부는 바람이 물을 밀고 누르는 압력 차이로 잔물결이 생기고, 잔물결은 바람의 에너지를 더 잘 받아 점점 커진다. 파도 하나를 묘사하는 말부터 정리해 두자.
파도가 얼마나 커지는지는 세 가지가 정한다. 풍속 \(U\)이 셀수록, 바람이 같은 방향으로 부는 바다의 길이인 취송 거리(Fetch) \(F\)가 길수록, 바람이 부는 지속 시간 \(t\)이 길수록 파도는 높고 길어진다. 셋 중 가장 부족한 것이 성장을 막는다. 취송 거리가 짧으면 취송 제한, 시간이 짧으면 지속 시간 제한이다. 둘 다 충분하면 바람이 주는 에너지와 쇄파로 잃는 에너지가 균형을 이뤄 더는 자라지 않는 완전 발달 해상(Fully Developed Sea)에 이른다.
북해 관측 프로젝트 JONSWAP(1973)에서 얻은 경험식을 무차원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심해, 일정한 바람 가정).
바람이 파도를 키운다: 풍속·취송 거리·지속 시간
선형 파 이론과 물 입자의 궤도
파도가 지나갈 때 물은 파도와 함께 흘러가지 않는다. 바다에 뜬 갈매기는 파도가 지나가도 제자리에서 오르내리며 앞뒤로 조금 흔들릴 뿐이다. 움직이는 것은 물이 아니라 모양과 에너지다. 이를 수학으로 쓴 것이 선형(에어리) 파 이론(Linear / Airy Wave Theory)이다. 물을 비압축·비점성·비회전 유동으로 보고, 파고가 파장과 수심에 비해 작다고 가정해 경계 조건을 선형화하면 다음 해를 얻는다.
심해에서 반파장 깊이(\(z=-\lambda/2\))의 궤도 반지름은 수면의 \(e^{-\pi}\approx 4\%\)에 불과하다. 잠수함이 폭풍 속에서도 수십 m만 내려가면 고요한 이유다. 반대로 수심이 얕으면 해저가 수직 운동을 막아 궤도가 납작한 타원이 되고, 해저에서는 앞뒤로만 오가는 왕복 운동이 남는다. 해저의 모래가 파도에 쓸려 다니는 것이 이 운동 때문이다.
물 입자 궤도 운동 애니메이션
분산 관계: 긴 파도가 빠르다
주기와 파장은 아무렇게나 짝지어지지 않는다. 선형 파의 수면 경계 조건은 파수 \(k\)와 각주파수 \(\omega\) 사이에 하나의 관계를 강제한다. 이것이 분산 관계(Dispersion Relation)다.
심해에서 파속이 주기에 비례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주기의 파가 섞여 있으면 긴 파가 먼저 도착한다는 뜻이다. 주기에 따라 속도가 달라 파들이 흩어지는 이 성질을 분산이라 부른다. 반면 천해에서는 모든 파가 \(\sqrt{gh}\)로 같이 달린다(비분산). 그 사이에서는 원식을 풀어야 한다.
주기·수심 → 파장·파속 계산기
| 주기 T | 심해 파장 λ0 | 심해 파속 c0 | 군속도 cg | 흔히 만나는 곳 |
|---|---|---|---|---|
| 4 s | 25 m | 6.2 m/s (12 kn) | 3.1 m/s | 호수·연안의 잔파도 |
| 8 s | 100 m | 12.5 m/s (24 kn) | 6.2 m/s | 연근해 풍랑 |
| 12 s | 225 m | 18.7 m/s (36 kn) | 9.4 m/s | 대양 폭풍파, 너울 |
| 16 s | 400 m | 25.0 m/s (49 kn) | 12.5 m/s | 먼 폭풍에서 온 긴 너울 |
위상 속도와 군속도, 파의 에너지
주기가 조금 다른 두 파를 겹치면 맥놀이(비트)가 생겨 파도가 무리(그룹)를 짓는다. 바닷가에서 "큰 파도가 몇 개씩 몰려온다"고 느끼는 것이 이것이다. 이때 개별 마루는 위상 속도 \(c=\omega/k\)로 달리지만 무리, 즉 포락선은 군속도(Group Velocity)로 움직인다.
파 에너지는 바로 이 군속도로 전달된다. 단위 수면적당 평균 에너지(운동+위치 에너지 반반)와 파봉 단위 폭당 에너지 수송률(파력)은 다음과 같다.
두 파의 합성: 마루는 c로, 무리는 cg로
불규칙 파: 성분파의 합
실제 바다를 사진으로 찍어 보면 같은 모양의 파도가 둘도 없다. 그러나 선형 이론이 성립하면 해의 합도 해이므로, 불규칙한 바다는 주기·진폭·방향·위상이 다른 무수한 사인파의 합으로 볼 수 있다. 한 점에서 잰 수면 높이는 다음과 같다.
성분파를 하나씩 더해 불규칙 파 만들기
파 스펙트럼
불규칙한 바다를 매번 시계열로 기술할 수는 없다. 대신 "어느 주파수에 에너지가 얼마나 있는가"를 나타내는 파 스펙트럼(Wave Spectrum) \(S(\omega)\)로 요약한다. 성분파 하나의 분산이 \(a_i^2/2\)이므로 \(S(\omega_i)\,\Delta\omega = a_i^2/2\)이다. 스펙트럼의 모멘트는 해상 상태의 대표값들을 준다.
대양에서 오래 분 바람이 만든 완전 발달 해상은 피어슨–모스코위츠(Pierson–Moskowitz, PM) 스펙트럼으로 잘 맞는다. 취송 거리가 제한된 성장 중의 바다는 첨두가 더 뾰족한 JONSWAP 스펙트럼을 쓴다. 뾰족함은 첨두 증폭 계수 \(\gamma\)(평균 3.3)가 정한다. \(\gamma=1\)이면 PM과 같다.
PM·JONSWAP 스펙트럼과 합성 시계열
너울과 풍랑
바람이 지금 불고 있는 곳의 파도를 풍랑(Wind Sea), 바람이 부는 해역을 떠나 멀리 퍼져 온 파도를 너울(Swell)이라 한다. 풍랑은 주기가 짧고 마루가 뾰족하며 방향이 흩어져 있고 흰 파두가 섞인다. 너울은 분산 덕분에 긴 주기 성분만 골라져 와서 주기가 길고(10~20 s) 마루가 둥글고 고르다. 실제 바다는 흔히 둘이 겹쳐 스펙트럼에 봉우리가 두 개 생긴다.
너울이 멀리서 왔다는 증거는 도착 순서에 있다. 거리 \(D\) 떨어진 폭풍에서 출발한 성분은 군속도 \(c_g = gT/4\pi\)로 이동하므로 도착 시각이 \(t = 4\pi D/(gT)\)이다. 해변에서는 긴 주기가 먼저 오고 시간이 지나며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거꾸로, 도착하는 주기의 변화율로 폭풍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Munk, 1947).
먼 폭풍에서 온 너울의 도착 순서
| 구분 | 풍랑 (Wind Sea) | 너울 (Swell) |
|---|---|---|
| 발생 | 지금 부는 바람 | 먼 곳의 폭풍, 바람이 그친 뒤 |
| 주기 | 짧음 (3~10 s) | 김 (10~20 s 이상) |
| 파형 | 뾰족하고 불규칙, 흰 파두 | 둥글고 고르며 길게 이어짐 |
| 방향 | 바람 방향 주변으로 넓게 퍼짐 | 좁은 방향 범위 |
| 스펙트럼 | 넓은 봉우리 (γ ≈ 1~3.3) | 좁고 뾰족 (γ ≈ 5~10) |
| 배에 미치는 영향 | 슬래밍, 갑판 침수 | 큰 배의 공진 횡동요, 계류선의 장주기 운동 |
파고의 통계와 이상파
스펙트럼이 좁다면(주파수가 한 봉우리에 모여 있다면) 개별 파고 \(H\)는 레일리 분포(Rayleigh Distribution)를 따른다. 이 분포 하나로 여러 대표 파고 사이의 비가 정해진다.
3시간 폭풍에서 \(T_z = 9\) s면 약 1,200개의 파가 지나가고 \(H_{max}\approx 1.88\,H_s\)이다. 설계에서 흔히 "최대 파고 ≈ 유의파고의 1.86~2배"라고 하는 근거다. 유의파고의 두 배를 넘는 파를 이상파(Rogue / Freak Wave)라 부른다. 레일리 분포로는 약 3,000개 중 1개(\(e^{-8}\approx 3.4\times10^{-4}\))꼴이니 아주 드문 것만은 아니며, 실제 관측에서는 비선형 효과로 이보다 조금 더 잦다. 1995년 북해 드라우프너 플랫폼은 \(H_s\approx 12\) m 해상에서 파고 25.6 m의 파를 기록했다.
레일리 분포와 폭풍 속 최대 파고
보퍼트 풍력 계급과 해상 상태
계측기가 없던 시절, 1805년 영국 해군의 프랜시스 보퍼트는 바다의 모습으로 바람의 세기를 0~12의 13단계로 나누었다. 지금도 선박 기상 보고와 항해 일지에 쓰이는 보퍼트 풍력 계급(Beaufort Scale)이다. 파고로 바다를 나누는 WMO 해상 상태(Sea State Code) 0~9도 함께 쓴다. 표의 파고는 대양에서 바람이 충분히 분 뒤의 대략적인 값이다.
| 계급 | 이름 | 풍속 (kn) | 풍속 (m/s) | 대략 파고 | 바다의 모습 |
|---|---|---|---|---|---|
| 0 | 고요 | <1 | 0~0.2 | 0 m | 거울 같은 수면 |
| 1 | 실바람 | 1~3 | 0.3~1.5 | 0.1 m | 비늘 같은 잔물결 |
| 2 | 남실바람 | 4~6 | 1.6~3.3 | 0.2 m | 작은 물결, 마루가 유리처럼 매끈 |
| 3 | 산들바람 | 7~10 | 3.4~5.4 | 0.6 m | 마루가 부서지기 시작, 흰 파두 드문드문 |
| 4 | 건들바람 | 11~16 | 5.5~7.9 | 1 m | 파도가 길어지고 흰 파두가 잦음 |
| 5 | 흔들바람 | 17~21 | 8.0~10.7 | 2 m | 뚜렷한 긴 파도, 흰 파두가 많고 물보라 |
| 6 | 된바람 | 22~27 | 10.8~13.8 | 3 m | 큰 파도, 흰 거품 마루가 넓게 퍼짐 |
| 7 | 센바람 | 28~33 | 13.9~17.1 | 4 m | 바다가 부풀고 거품이 바람 방향으로 줄무늬 |
| 8 | 큰바람 | 34~40 | 17.2~20.7 | 5.5 m | 마루 끝이 날려 물보라, 거품 줄무늬 뚜렷 |
| 9 | 큰센바람 | 41~47 | 20.8~24.4 | 7 m | 높은 파도, 마루가 넘어지며 굴러떨어짐 |
| 10 | 노대바람 | 48~55 | 24.5~28.4 | 9 m | 매우 높은 파도, 바다가 하얗게 보임 |
| 11 | 왕바람 | 56~63 | 28.5~32.6 | 11.5 m | 배가 파도 뒤에 가려질 만큼 높음, 시정 불량 |
| 12 | 싹쓸바람 | 64 이상 | 32.7 이상 | 14 m 이상 | 공기가 거품과 물보라로 가득, 바다 전체가 흰색 |
보퍼트 계급에 따라 바뀌는 바다
천수 변형: 해안에 다가가는 파도
파도가 수심 \(\lambda_0/2\)보다 얕은 곳으로 들어오면 해저를 "느끼기" 시작한다. 주기는 끝까지 변하지 않지만 분산 관계에 따라 파장과 파속이 줄어든다. 에너지 수송률 \(P=E c_g\)는 (마찰과 쇄파 전까지) 보존되므로, 군속도가 줄면 에너지가 쌓여 파고가 커진다. 이것이 천수 변형(Shoaling)이다.
해안으로: 파장은 짧게, 파고는 높게, 그리고 쇄파
굴절: 파도는 해안선과 나란해진다
파봉이 해안에 비스듬히 들어오면, 얕은 쪽 끝은 느려지고 깊은 쪽 끝은 여전히 빠르다. 그래서 파봉이 돌아 등심선과 나란해지려 한다. 빛의 굴절과 똑같은 스넬 법칙(Snell's Law)이 성립한다. 곶(headland)에서는 파 진행선(파향선)이 모여 에너지가 집중되고, 만(bay)에서는 퍼져 잔잔해진다. 해수욕장이 만 안쪽에, 등대가 곶 끝에 있는 이유다.
굴절 평면도: 파향선 추적
쓰나미: 대양을 가로지르는 천해파
해저 지진이 만드는 쓰나미(Tsunami)는 파장이 수십~수백 km에 이른다. 수심 4,000 m 대양도 이 파에게는 "얕은 물"(\(h<\lambda/20\))이므로 속도는 \(c=\sqrt{gh}\)다. 대양에서 약 200 m/s(제트기 속도)로 달리면서 파고는 1 m도 되지 않아 배 위에서는 느끼지 못한다. 해안에 다가오면 속도가 줄고 에너지가 압축되어 파고가 그린의 법칙 \(H\propto h^{-1/4}\)으로 커진다. 대양의 배가 쓰나미 경보에 오히려 먼 바다로 나가는 이유다.
쓰나미의 속도와 해안 증폭
핵심 정리
- 풍파의 크기는 풍속·취송 거리·지속 시간 중 가장 부족한 것이 정한다. 완전 발달하면 \(H_s \approx 0.24\,U^2/g\), \(T_p\approx 8\,U/g\)이다.
- 선형 파에서 물은 흘러가지 않고 궤도 운동을 한다. 심해에서는 원 궤도가 \(e^{kz}\)로 줄어 반파장 깊이에서 4%가 되고, 천해에서는 납작한 타원이 된다.
- 분산 관계 \(\omega^2 = gk\tanh kh\). 심해 \(\lambda_0 = 1.56T^2\), \(c_0 = 1.56T\); 천해 \(c=\sqrt{gh}\). 긴 파가 빠르다.
- 군속도는 심해에서 \(c/2\), 천해에서 \(c\)다. 에너지 \(E=\rho gH^2/8\)는 군속도로 전달되며 파력은 \(P=Ec_g\)다.
- 불규칙 파는 무작위 위상을 가진 성분파의 합이고, 파 스펙트럼 \(S(\omega)\)로 요약한다. \(H_s = 4\sqrt{m_0}\), \(T_z=2\pi\sqrt{m_0/m_2}\).
- PM은 완전 발달 해상, JONSWAP은 첨두가 뾰족한 성장 중의 해상(\(\gamma\approx3.3\))을 나타낸다. 너울은 분산으로 긴 주기만 남은 좁은 스펙트럼이며 긴 주기가 먼저 도착한다.
- 개별 파고는 레일리 분포를 따른다. \(\bar H\approx0.63H_s\), \(H_{1/10}\approx1.27H_s\), \(H_{max}\approx H_s\sqrt{\ln N/2}\)(3시간 폭풍에서 약 1.9배). \(H>2H_s\)인 이상파도 수천 파에 하나꼴로 나온다.
- 해안에 다가오면 파장은 짧아지고 파고는 \(K_s=\sqrt{c_{g0}/c_g}\)로 커지다가 \(H\approx0.78h\)에서 부서진다. 굴절로 파봉은 등심선과 나란해지고 곶에 에너지가 모인다. 쓰나미는 대양에서도 천해파로 \(\sqrt{gh}\)로 달린다.
확인 퀴즈
Q1. 주기 12 s 파의 심해 파장과 파속은 대략 얼마인가?
Q2. 심해에서 파장 100 m 파가 지나갈 때, 수심 50 m 지점 물 입자의 궤도 반지름은 수면의 몇 %인가?
Q3. 심해에서 무리 지어 오는 파도를 관찰하면 개별 마루는 어떻게 보이는가?
Q4. 파고가 2 m에서 4 m로 두 배가 되면, 같은 주기의 심해파가 전달하는 파력(P = E·cg)은?
Q5. 어떤 파 스펙트럼의 0차 모멘트가 \(m_0 = 2.25\ \text{m}^2\)이다. 유의파고는?
Q6. 유의파고 6 m, \(T_z=10\) s인 폭풍이 약 3시간(N ≈ 1,000) 지속될 때 예상 최대 파고에 가장 가까운 것은?
Q7. 해변에 너울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관측되는 주기는 어떻게 변하는가?
Q8. 수심 4,000 m 대양에서 쓰나미의 속도는 대략 얼마이며, 그 이유는?